제가 벌초라는걸 처음 가본게 아마도 20대 초반이었지 싶습니다.
말이 20대초반이지, 어릴때 부터 문중 차례따라 다니는게 전부였었지요.
그때는 그랬습니다.
조상님을 생각하며, 한가닥의 기원이라도 드리려고 했던 기억은
전혀 없었습니다.
또래 친구들 만나서 장난치고, 맛난 음식 먹는 재미 하나로도 충분히
유년시절의 즐거움이었으니까요.
제가 태어났던 곳.
아니 본관이라 해야겠군요.
사실 아버지때까진 수죽리라는 이곳에서 대대손손 살아 오시다가
제가 태어날 즈음, 산너머 이웃마을로 아버지 형제분들이 이주 하셨기에..
그마저도 제가 초등학교 입학전에 대구로 나오는 바람에
고향을 배경으로 한 저의 추억꺼리는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 나이 20이 막지난 녀석이 어르신들 뒤따라 차례지낸답시고,
따라 다녀본들..<몇몇 어르신들은 뭔가를 설명도 해주셨던 기억이 있지만>
뿌리에 대한 개념이 자리 잡히질 않더군요.
아련한 기억 가운데에는
흐릿한 모습으로 골짜기 산으로 올라가시는 어른들 모습과
아~ 그때는 예초기라는 것도 없었나봅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처럼 낫과 톱만 가지고도 많은 곳의
벌초는 자동으로 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면 그날 오후엔 또 어김없이 풍성한 먹을거리가
저를 기다렸다는 듯이 반기곤했지요.
시간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 않는다는 것도 커 가면서 깨달아 가는 것 같습니다.
억지로 가르치려들면 귀에 안들어 오던 것들도
막상 제가 아버지의 입장이 되고보니,
알아야 겠다는 동기가 생깁니다.
제가 그랬던것 처럼 지금 제가 아들에게 뭔가를 이야기 해주더라도
알았다는 듯 끄떡이지만,, 글쎄요.
그때의 저와 별반 다를 건 없지 싶습니다.ㅋ
다랭이 논처럼 한층 한층 올라가면서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이러는 동안 아무리 생전에 권세를 누리고, 부귀를 누렸더라도
그저 긴 시간속에서 하나의 점일뿐.
그리고 그 점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야 된다는 것 정도..
언젠가 닥칠지도 모를 죽음에 대한 경의로움까지...
언젠가 부터 부쩍 늘어난 벌때의 공격위협 속에서도
꿋꿋하게 나의 뿌리를 확인이라도 하겠다는 듯
그렇게 모두들 기를 써고 벌초를 했더랬죠.
더러는 정말 장수말벌에 쏘여 한 5분여 의식없는 친지분도 봤고..
저또한 태어나 처음으로 땅벌의 습격으로 응급실행도 겪어봤지만요.
해가 갈수록 벌초 참여자는 줄어들고,
이건 출산율과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대와 저희아들대의 비율이 절반이하로 떨어진걸 보면 말입니다.
아마도 더더욱 인원부족 현상은 심해질꺼고,
덩달아 아무리 잘 관리된 선산이라지만 사람이 다니지 않으니
산의 우거짐과 벌떼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ㅎㅎ,
결정의 때가 온겁니다.
3년이란 준비기간을 거쳐
좋은 땅 고르고, 진입로 만들고해서 올 윤달에 이장을 했습니다.
몇달새 잔디가 잘자라, 가지고 간 예초기는 시동도 못걸어 봤습니다.
조상님들 못지 않게 저희도 뿌듯합니다.
뿔뿔히 흩어져 벌초하면서도 이 묘소가 누구신가 했던적도 있지만,
그럴 일이 없고, 험준한 산을 헤치며 벌초할 일도 없으니 말입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이쯤되니... 제 자리의 위치까지 대략 나옵니다.^^;
아 저 자리가 내가 갈 자리구나.
이상한게, 서글픔보다는 안정감이 먼저 옵니다.
아들아...
내가 그랬던것 처럼...나중에...
가끔씩 들러 술 한잔이라도 놓아 준다면 더 바랄게 없겠구나.
(벌초는 잘들 다녀 오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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